치우천황
- 치우천황(자오지천황)은 BC 3898년 음력 상달(10월) 초사흘날 배달한국(밝달 한국)이 개국 된지 1191년(갑인년)이 되던 해인 BC 2707년 배달한국(밝달한국)의 제14대 한웅으로 즉위한 불세출의 걸출한 대영웅이시다.
- 중국 화하족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기마민족인 동이족 배달한국(밝달한국)의 식민통치를 받아 오고 있었다.
- 화하족은 치우천황이 온 천하를 다스리고 있던 때에 독립을 하기 위하여 헌원 을 중심으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.
- 이 전쟁은 동이족과 중화족 간의 운명을 건 대규모 민족전쟁이었다.
- 10년간 치러진 크고 작은 전쟁에서 불세출의 대 영웅 치우천황은 80전 80승 의 전무후무한 대 승리를 거두었다
- 헌원측에서 자치권을 인정해주는 선에서 전쟁을 종결짓기를 원하는 탄원을 해 오므로, 치우천황 입장에서도 군대를 이끌고 드넓은 중국천지를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헌원군을 무한정 쫓아 다닐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.
- 치우천황은 그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치권 정도는 인정해 주는 것으로 하여, 헌원을 치우천황 발아래 무릎 꿇리게 하고 항복을 받아 헌원에게 황제 (黃帝)의 벼슬을 내려 주고 10년간의 민족 전쟁을 끝냈다.
- 이로써 화하족은 동이족 배달한국의 식민통치에 벗어나 자치권을 얻게 되었다.
- 배달한국(밝달한국)의 벼슬 중에 오제(五帝)가 있는데 황제(黃帝)를 수석 장관 으로 하고 현제(玄帝), 적제(赤帝), 청제(靑帝), 백제(白帝)가 그 것이다.
- 삼칸(우사. 풍백. 운사)아래 전국을 5부로 나누고 각 지방을 다스리게 했다. 이들 5부 대가(大加)들은 청, 적, 백, 현의 순서로 매 3년마다 그 임지를 바꾸 어 맡는데 매 12년이 되면 제위에서 은퇴하는 매우 선진적인 공화제도였다. 헌원에게 수석장관에 해당하는 벼슬을 내려 준 것은 배달한국의 수석제후로 대접한다는 의미가 있다.
- 치우천황이 전쟁터에 출정하실 때 머리에는 소뿔 달린 투구를 썼고, 얼굴에는 도깨비 형상의 청동탈을 썼다.
- 치우천황이 머리에 썼던 소뿔 달린 투구는 우두머리로 표현이 되었는데 이때 부터 우두머리의 의미는 수장, 최고, 으뜸, 지도자 등으로 지금까지도 그 의미 가 이어져 오고 있다.
-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수많은 국민들이 참여한 응원단인 붉은악마가 사용했 던 응원 깃발에 새겨진 문양은 승리의 신, 전쟁의 신이었던 치우천황께서 싸움터에 나가실 때 얼굴에 썼던 청동 탈의 도깨비형상을 응원기에 새겨 응원 하였다.
- 지금도 국가간 축구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 각지에서 치우천황의 상징인 예쁘게 디자인한 소뿔 달린 머리띠를 꽂고, 도깨비 형상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곳곳에서 응원을 하고 있다.
-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선수들 머리에 쓰는 안전모에 치우천황의 상징인 도깨비가 그려져 있는 안전모를 쓰고 경기에 출전해서 많은 금메달을 따냈다.
- 치우천황에 관한 역사적 증거 중 일부 사료
- 1. 1973년 중국 호남성에서 발굴한 "마왕퇴 3호분 BC 2144년 기록의 「황제사경」 진본"을 통해 치우천황과 헌원 간의 충돌이 역사적 사실임이 밝혀졌다.
- 2. 2001년 3월 중국 산동성 남원진에서 치우총과 치우사의 두 비석을 발굴해 냄으로써 우리 한민족 최고의 전설적인 불세출의 대 영웅 치우천황의 역사적 실체가 들어났다.
- 3. 중국의 "탁록 중화 삼조문화연구회" 부회장 "조육대"가 지금까지 발견한 치우천황과 헌원 간의 충돌을 기록한 중국측 서적이 23권이나 된다.